« Jesus Factor | Main | 뛰어난 cybertect가 되려면 »
April 30, 2004
굿바이 레닌(Goodbye Lenin)을 보고: 자서전적 기억 (Autobiographical Memory) 첫번째 이야기
기억은 자아(自我: self)가 있고나서야 존재한다 (가끔 아기 때 일을 기억한다는 사람 이야기를 듣다보면 "참 자아형성이 빨리 되신 분이구나" 하고 경탄(?)해 마지 않을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기억이란 하나의 "자아(自我)"가 자신의 목표(goal)에 따라 지각하고 경험한 일들이 이미지나 감정, 그리고 다른 구체적인 감각으로 재현되는 것을 말한다 (Conway, 2002, p.54). 역(逆)으로 자아(自我) 역시 기억의 반영이다. 즉 한 인간의 자아(自我)는 시간의 흐름속에 일부 퇴색하거나 흐릿해지고 일부는 재구성되어 남아 있는 기억의 집합체이다. 어느 경우에도 정확한 기억은 없다. 많은 부분은 죽고, 형체가 쪼개지며, 설령 남아 있더라도 개인의 스키마에 따라 재구성되어 남게 된다. 한마디로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다.
기억과 자아가 서로 엉켜있다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정신분열이나 망상(delusion)은 자아와 기억이 분리되고 서로간에 엉켜 있어야 할 타래가 풀리는 것을 말한다 (Conway, 2002, p.56). 예를 들어 예전에 언급했던 영화 Beautiful mind에서 그려지는 스끼쩌프리니어(schizophrenia) 라는 병은 "자아(自我)가 뒷받침해주지 않는 기억에 지배당하는 정신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기억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메모리를 크게 두가지로 구분한다는 걸 소개한 적이 있다. 자아(自我) 던지기에서 설정한 목표(goal)에 따라 기록되는 블로그 역시 자아(自我)의 기억을 담는 곳이 된다. "4월 16일 롯데월드에 가서 그녀와 바이킹을 타고 맛있는 스파케티를 먹었다"처럼 시간과 장소를 안고 있는 기록을 에피소딕 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고 냉전수구골통이다"라는 사실(fact)에 근거한 기록은 "프랑스의 수도는 파리다"라는 기억과 마찬가지로 semantic memory를 구성한다.
그리고 어느 개인의 자아는 이벤트에 바탕을 둔 에피소딕 기억(episodic memory)이 누적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고 수구골통들이다"라는 객관적 사실(semantic memory)에도 불구하고 어느 개인이 한나라당 사람들과 같은 아이덴티티를 갖는 이유는, 그 사람이 기억하는 에피소딕 기억(episodic memory)이 한나라당과 같은 뿌리를 가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차떼기 지지자들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쉬운 예로 H당 J모의원측이 꾸며놓았을 가능성이 높은 거짓말 에피소드("우리 며느리가 들었다 카더라. 남편이 국회의원 하면서 도둑질해서 재산 모았다 카대. 첩 데리고 선거운동 한다 카대. 집만 얻어놓고 잠도 안 잔다 카대")가 이들의 기억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에피소딕 메모리 이야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오늘부터 몇차례에 걸쳐 나눠 쓸 예정인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episodic memory가 시간의 흐름속에 저장된 것을 자서전적 기억이라고 부른다. 이 자서전적 기억의 특징은 압축된 혹은 재구성된 이미지 형태로 저장되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지는 없더라도 어떤 단어를 들으면 특정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도록 우리의 감각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녹내장으로 고생한다는 어떤 사람의 기사를 읽고는 느닷없이 같은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던 아버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수없이 수술을 받고도 그 불치의 병에 시달리며 안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여러가지 약을 투여하시던 아버님 생전 모습이 압축된 형태로 떠오른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자서전적 기억의 작용이다. 이런 이미지나 감각 역시 쪼개지고 파편화된 상태로 남기 때문에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는 이미지 기억의 연속 장면'은 영화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 자서전적 메모리를 구성하는 주요 기억의 성분들중에 전에 한 번 언급했던 "섬광 기억(flashbulb memory)"이라는게 있다. 기억이 자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자아(自我)와 깊게 관련된 기억들은 더 강하게 각인되고 더 오래 남게 된는 것이다. 또 이 자아(自我)에 충격을 주는 사건(이벤트)과 함께 기록된 기억은 더 오래 남게 된다.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어린 알렉스가 동독 최초의 유인 우주인이 떠나갈 때 아버지의 서독 망명으로 말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했던 것은 "동독 최초의 유인 우주인 Sigmund Jähn"의 모습이 너무나 극적이었기에 그 주변에 있던 모든 기억들이 섬광기억으로 함께 남았기 때문이다. 즉 어린 알렉스는 어머니가 말을 잃었던 이유가 아버지가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철이 들지 않았던 나이였다. 다만 우주선이 발사되는 평생 잊지 못할 "극적인 장면"에서 어머니를 쳐다봤는데 어머니는 실성한 사람처럼 우두커니 있었다는 것이다. 극적인 장면과 함께 옆에 있던 주변적 장면들이 함께 기억된다. 그리고 나중에 아버지가 처자식을 버리고 갔다는 것을 알 정도로 철이 들었을 때 다시 그 장면을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어머니의 말없음은 아버지의 서독행으로 연결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기억을 재구성한 셈이다.
영화 굿바이 레닌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독일 격변기를 알렉스라는 한 청년의 자서전적 기억을 통해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알렉스라는 자아의 눈에 투영된 그리고 그의 자서전적 기억속에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그의 자아속에 담긴 독일 통일에 대한 매개된 기억(mediated memory)을 함께 공유하는 셈이다. 만약에 고문 기술자 정형근같은 이의 자서전적 기억을 바탕으로 효자동 이발사를 그렸다면 우리는 당연히 정보부 지하실에서 물고문 전기 고문으로 김근태씨를 고문하고 깔깔대던 악마의 기억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포탈들이나 신문들의 영화평에서처럼 "거짓말 프로젝트"라는 말로 이 영화를 소개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단순한 사고처럼 보인다. 물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이 영화에서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플롯에 따라 영화가 전개된다. 하지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단순히 "거짓말 프로젝트"에 기반한 코미디가 아닌 것처럼 "굿바이 레닌" 역시 가벼운 코미디는 절대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갑자기 자서전적 기억이라는 해석으로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Reference:
Conway, M. A. (2002). Sensory-perceptual episodic memory and its context: Autobiographical memory. In A. D. Baddeley, M. A. Conway & J. P. Aggleton (Eds.), Episodic memory: New directions in research (pp. 53-70).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osted by gatorlog at April 30, 2004 09:27 PM
Trackback Pings
TrackBack스팸 피해때문에 트랙백 닫았습니다
http://gatorlog.com/mt/mt-tb.cgi/1622
코멘트 스팸 피해때문에 코멘트 닫았습니다
the editor and i just saw this movie the other night. we also were very impressed and talked about it for a long time. this kind of movie is exactly what we are looking for - engaged with history, yet not polemical; critical of society, but not stereotypically; emotionally invested, but not in a banal or objectifying manner. Truly wonderful.
Posted by: s.m. at April 30, 2004 10:10 PM
"The Isthmus," Madison, WI's alternative weekly paper, had a short, but interesting review of "Good Bye Lenin!" that focused on the movie's representation of "Ostalgie" (a.k.a., nostalgia for East Germany). You might find it interesting:
http://www.thedailypage.com/going-out/movies/reviews/movieReview.php?intReviewID=673
Posted by: Sung Hee at May 1, 2004 03:18 PM
두 개의 거짓말 구조. 아들의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어머니의.
거짓의 남용,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하여", 이상주의자, 도덕적 고양..
두서없이 떠오른 키워드 영화를 보고 나서.
Posted by: 김삼복 at May 6, 2004 05:45 AM